7월 4일, 빈활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이다. 비닐하우스 촌인 꿀벌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묵은 지도 어느덧 4일째, 이제는 비닐하우스에서 잔다는 것이 낯설지 않다. 비닐하우스 안의 눅눅한 습기와 땀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듯한 피부의 찐득한 느낌도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집에서 있을라치면 한여름엔 하루에 한번 이상 샤워하는 것이 당연지사였겠지만 이제는 4일 넘게 씻지 않을 만큼 인내력(?)이 늘어난 것 같다.
늘 주요 일정으로는 오전부터 저녁 전까지 하는 비닐하우스촌 실태조사가 있었다. 빈활대원들이 조를 나눠서 서울 시내의 비닐하우스촌을 찾아가 설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꿀벌마을, 수정마을, 우면마을, 화훼마을, 개미.새마을, 잔디마을, 장지마을이 대상 마을이었다. 내가 속한 조는 송파구에 있는 개미.새마을을 맡았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몇 번을 헤맨 끝에 겨우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눈앞에 넓은 비닐하우스촌이 펼쳐졌다. 꿀벌마을과 같은 비닐하우스촌이긴 했지만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집집마다 주소 표시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꿀벌마을의 경우 아직 주소지 인정을 받지 못해 현재 살고 있는 주소지로 주민등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주소지 인정을 받는 것이 주요 요구 과제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걸 미리 들은 상태여서 그런지 개미.새마을의 주소지 팻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우리 조는 다시 둘로 나누어 개미마을, 새마을로 각각 들어갔다. 나와 두 명의 빈활 대원은 마을 주민분의 안내를 받아 개미마을에 있는 그분의 집으로 향했다. 비닐하우스촌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주소지 팻말과 같이 벽마다 설치되어 있는 소화기가 눈에 띄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주민 분들이 치안문제로 가장 걱정하는 것이 화재였고 그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골목길마다 벽에 소화기를 설치한 것이었다. 전에 다른 비닐하우스촌인 화훼마을에서 큰 화재가 나서 그곳에 계셨던 마을 주민들과 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개미마을에도 몇 번 화재가 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주위로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바가지로 물을 퍼서 뿌리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주민 분의 집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던 중에 한 주민 분께서 빈대떡과 국수를 대접해 주셨다. (개미마을의 경우 가스는 LPG가스를 사용하고 있었고 수도나 전기 공급에 큰 어려움은 겪고 있지 않은 듯 했다.) 흐리고 비오는 날씨라서 그런지 빈대떡이 입에 딱 붙는 것 같이 맛있게 느껴졌다. 국수도 아주 맛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이든 풍족하게 주시는 주민 분의 손맛이, 그리고 같이 국수를 먹는 어르신들의 입담이, 후덕한 마을 인심이 주는 맛이라고 할까.
점심을 다 먹을 때 쯤 해서 마을 어르신들이 여러 분 오셔서 본격적으로 실태조사를 할 수 있었다. 실태조사를 하면서 마을 주민 분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개미마을은 비닐하우스촌에서 드물게 주소지 인정을 얻어낸 마을 중의 하나로 인근에 있는 가락시장에서 일일노동으로 생활비를 벌어 쓰시는 분이 많이 있다고 한다. 현재 이주대책문제가 가장 중요한 마을의 과제이고 그밖에 마을 주민간의 갈등으로 인한 회비 납부 거부, 이로 인해 단수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초래된 것 등이 주요 현안이었다. 교육 차원에서는 꿈나무 공부방이 운영되고, 의료 차원에서는 인근 대학의 한방 의료 봉사와 정기 혈당.혈압 체크 등이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필요를 채우는 데는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또 비가 오면 땅이 질퍽해지고 밤이 되면 가로등이 부족해 적절한 밝기를 유지하지 못하는 등 생활환경 개선의 필요도 있었다. 실태 조사를 하면서 우리를 정부에서 나온 아르바이트 대학생으로 오해(?)하시는 어르신들도 있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시혜하는 자가 아닌 연대하는 자의 입장에서 마을 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실태 조사를 마치고 꿀벌 마을로 돌아와서 마을 분들과 함께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오늘이 꿀벌 마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고 마을 분들께서 직접 밥과 음식을 차려 주셨다. 저녁 식사 후에는 조촐하게나마 학생-주민이 함께하는 마을 문화제를 가졌다. 주민 분들의 발언과 학생들의 문화공연, 그리고 노래와 춤이 있는 어우러짐의 시간이었다.
문화제 후에는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 오늘 조별로 비닐하우스촌 실태 조사한 것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 주민들께서 너무나 진지한 자세로 들어주셨고 학생들도 부족한 경험이지만 나름대로 조사한 것을 성실하게 발표하였다. 보고 후에는 비닐하우스주민연합 사무국장께서 빈민운동에서 학생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보고회를 마치고는 마을 주민 분들과 빈활대가 함께 하는 뒷풀이 시간을 보냈다.
빈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빈활을 시작하고 어느덧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생각해 본다. 문화제 때 학생들이 했던 주거권을 다룬 연극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우리는 여기 살고 있는데 우리집은 어디 있는 거죠?” 내일은 노숙인을 만나러 간다. 노숙인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내 존재는 어디 있는 거죠?”라고. 갖고 있지만 갖고 있지 못하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 이런 것들이 빈곤 문제의 시작이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갖지 못하고 권리를 찾을 기회까지 박탈당하여 삶의 끝자락까지 내몰린 이들은 결국엔 기어이 생존을 건 투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07년 여름 빈활단은 오늘도 내일도 이들과 손잡고 함께 뛰러 간다. 그곳으로. 숨은 빈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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