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예방 위해 휴대전화도 감청 허용해야", "간접감청제 도입 바람직"
1일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개최한 ‘선진한국을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방향’ 토론회에 대한 각 언론 보도 제목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 4개는 모두 한나라당 특정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MB 악법'으로 지목되어 온 이한성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지지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지지자들이 공통으로 주장한 내용은 저 표제들이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휴대전화 감청을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방식은 정보수사기관이 직접 감청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감청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휴대전화 감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이 주장하였듯이 휴대전화 감청을 위해 굳이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으로도 휴대전화 감청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문에는 감청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인터넷을 통째로 감청하는 이른바 '인터넷 패킷 감청'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가. 휴대전화라고 별다른 게 있겠는가.
지금 휴대전화 감청이 적어도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법 때문이 아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과 정부의 휴대전화 감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 기술에 대한 감청이 허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안의 핵심 역시 휴대전화 감청에 있지 않다. 이 법안의 진정한 핵심은 '사업자를 시켜 감청하게 하는 데' 있다.
이 부분은 김권혁 서강대 교수가 확인해 주었다. 그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국가가 사업자를 통해 감청하려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기술 발전의 짧은 주기 때문에 정보수사기관들이 새로운 감청 장비를 빨리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는데, 장비와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공식적으로 거치는 것이 '장애'로 여겨져 왔고, 고가의 첨단장비를 도입해도 그 사용 수명이 갈수록 줄어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감청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 상의 편의 때문에 민간 사업자를 통한 감청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것이다. 정부의 행정적 업무를 사적 주체를 통해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는 오동석 교수가 지적한 대로 '행정사법'에 해당한다.
직접감청 vs 간접감청
국가정보원과 한나라당은 이러한 행정사법이 감청이라는 행정 공권력의 불법과 오남용을 방지하고 투명한 집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원과 사업자라는 제3자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과 사업자가 국가정보원의 감청에 대한 충분한 견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인정한 사실은, 현재 우리 사법부에 국가정보원의 감청을 견제할 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법문에 2개월로 한정된 감청기간이 무려 28개월에 이를 때까지 계속 연장되어 왔고, 사법부나 사업자는 그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감청을 거들 뿐이었다. 전체적으로는 7년에 걸쳐 유선전화, 팩스, 문자메시지, 이메일, 인터넷 회선에 대해 저인망식 감청이 이루어져 왔지만 이것을 제지할만한 권력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으로 통신비밀을 침해한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제정 취지와 관련 법문들은, 우리의 구체 현실 속에서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간접감청이 표방하는 취지가 나쁜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이 직접 감청장비를 갖는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직접 감청장비를 운용하다 보면 그나마 있는 법원의 통제마저 우회하여, 불법적으로, 내키는 대로 사용해도 아무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통계만으로도 전체 감청건수의 98.5%(2008년)를 점하는 국가정보원의 직접감청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2005년 소위 안기부 X파일이 어째서 충격적이었던가? 정부가 표면적으로 CDMA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거짓말이었다. 국가정보원은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몰래 개발하여 불법적으로 운용해 왔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대상자에 가까이 접근하여 사용하는 휴대형 감청장비(CAS)와 사업자 설비에 부착하는 설치형 감청장비(R-2)를 입맛대로 써 왔다.
토론회에서 주성영 의원이 주장한대로 이 장비들이 '간첩'들만을 대상으로 했던가? 당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도청 피해자는 정치인이 273명으로 가장 많았고, 고위 공무원 84명, 언론계 인사 75명, 재계 57명, 법조계 27명, 학계 26명, 기타 104명 등이었다. 아고라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시물만 올려도 42개 정부부처와 사정당국이 그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는 최근 상황에서 국가정보원의 감청 문제는 '간첩'만이 아닌 전 시민의 문제이다.
최근에 드러난 사실은 어떠한가? 국가정보원이 90년대 말부터 인터넷 패킷 감청 장비를 도입해 사용해 왔다는데 국민도, 국회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국가정보원의 직접감청이 가장 문제
직접감청, 문제이고 두렵다. 그래서 앞으로는 감청을 간접화하여 투명하고 민주적인 통제 하에 집행하겠다는 국가정보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싶다. 이한성 의원의 개정안에서는 수사기관이 감청을 집행할 때 사업자에 집행을 위탁하거나 협조를 요청하도록 의무화하고(안 제9조 제1항 제1호), 이를 위반할 때는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했다.
문제는 국가정보원에 이 조항에 대한 예외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위 조항에도 불구하고 법 제7조 제1항 제2호 및 제8조 제8항에 따라 집행하는 감청은 의무사항에서 제외한다(안 제9조 제1항 제2호). 이 조항들은 정보수사기관의 외국인 감청에 대한 것이다. 즉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들은 외국인 수사를 위해서 직접 감청장비를 가지고 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외국인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유일하게 법원이 관여할 수 없는 비밀 영역이다. 비밀 영역에서 비밀 감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이 법안에 공들이고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간접감청이라는 명분으로 사업자를 통해 감청 집행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평소에 아끼는 한편, 직접 감청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명분도 빠뜨리지 않는 것.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닌가.
이 때문에 올 초에 있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이한성 의원 안에 호의적이었던 조순형 의원조차 "이런 부분을 두고 어떻게 직접에서 간접으로 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따지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최대 감청 기관이다. 그러니 간접감청에서 국가정보원을 빼놓는다면 다 헛짓이다. 이 법안이 감청을 투명화 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소도 웃을 것이다.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과거의 거짓말 이상으로 큰 거짓말이 지금 횡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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