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12시,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한 무리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이들은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정몽구 회장 직접교섭 촉구”라고 적힌 누런 봉투가 들려있다. 기아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기아차그룹의 총수에게 교섭을 요청한 것이다. 이 당연한 교섭요청이 왜 ‘직접교섭’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6년 만에 시도되는가? 기아차의 부품도 아니고 완성차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임에도 이들은 법에 따르자면 기아차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법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빌어먹을 굴레이다.
국내 최초이자 ‘아직은’ 유일한 껍데기, 동희오토
법이 붙여놓은 대로 설명을 하자면 이들 노동자들은 현대-기아차의 하청업체인 동희오토하고도 또 그 사내하청업체들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1년 계약을 반복하며 수년간 고용불안에 시달려왔으며, 견디다 못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다. 동희오토는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국내 최초이자 ‘아직은’ 유일한 완성차 외주하청공장이다. 그러나 동희오토라는 이름은 껍데기일 뿐이다. 공장토지와 건물은 현대에서 빌려 쓰고 기계설비는 현대캐피탈에서 빌려 쓰는 사실상 현대-기아차의 공장이다. 그리고 동희오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한 현대-기아차의 노동자여야 하지만 현대-기아차는 간접고용에 또 2차 간접고용을 덧붙이는 고용방식으로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회피해온 것이다. 이로 인해 동희오토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책임 있는 사용자와 교섭 한 번 해볼 수 없었으며 많은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자장면 한 그릇 값에 추월당하는 인생
동희오토에는 사무직 150여명을 제외한 생산직 900여명 전원이 17개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다. 이들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겨우 넘는 임금을 받는 것도 모자라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고용불안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서산사람 아무나 붙잡고 ‘동희오토를 아느냐’고 물으면 젊은이 중 절반은 ‘나도 거기 다녔다’고 답하고, 어르신들은 가족이나 친척 중에 누군가는 그곳에 다녔다고 답한다. 왜 ‘다녔다’ 일까? 동희오토가 모닝을 양산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공장을 거쳐 간 노동자만도 어림잡아 4000명이 넘는다. 허울이 좋아 완성차공장이지, 기대를 걸고 입사했던 서산 청년들은 지독한 노동강도에 지치다 못해 자신의 시급이 자장면 한 그릇 값에 추월당할 때마다 절망감에 공장을 떠나거나 항의하다 쫓겨난 해고자신세가 된다. 그래서 얻은 동희오토 공장의 별명이 절망의 공장이다.
모닝 한 대에 1인당 100원?
동희오토, 아니 마땅히 기아차 서산공장이라고 불러야 한다. 기아차 서산공장은 1시간에 모닝을 44대 생산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시급은 4110원(2010년 최저임금)이다. 노동자 1인 당 ‘모닝’ 한 대를 생산하고 받는 돈이 채 100원도 못되는 셈이다. 반면 노동강도는 엄청나다. 서산공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갓 군대를 제대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노동자들이다. 이 팔팔한 젊은이도 첫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얼얼한 손가락을 주무르고 허리를 두드려야 한다. 그리곤 너무 피곤해서 대충 씻고 쓰러져 잤다가 아침에 일어난 젊은 노동자는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출근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된다. 서산공장은 라인속도가 너무 빨라 공구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작업량이 많다. 서산공장의 생산성이 기아자동차의 1.75배라고 할 정도로 적은 인원에,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해야만 한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깃발, 간접고용의 벽
나는 관리자들 앞에서 1년짜리 계약 연장을 위해 벌벌 떨어야 하는 노동자, 그마저 하청업체가 기아차와의 도급계약이 해지되면, 남은 계약기간에 상관없이 자동으로 잘리는 ‘간접고용비정규직노동자’다. 노동자의 이름이 길면 대접과 권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해마다 재계약의 불안감에 업체 폐업에 대한 불안감, 2중의 불안 속에 전전긍긍하며, 관리자들이 안기는 굴욕감을 참고 견딘다. 자동차를 만든다는 자부심은 오간데 없고, 아무 의욕 없이 출근해서 죽어라 라인에 매달려 일하다 퇴근하면 소주 한 잔 걸치고 쓰러져 잤다가 다음날 또 기계처럼 출근하는 나는, 정몽구 회장이 만들어낸 ‘절망의 공장’ 동희오토의 해고 노동자다.
2005년 이 절망의 공장에도 노동조합의 깃발이 올랐다. 순식간에 조합원은 늘어났고 나도 조합원이 됐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자본은 자신들이 만든 걸작(?)에 민주노조가 들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노조결성에 주축이 된 노동자들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를 통째로 폐업시켜 전원 해고시키고, 아예 어용노조를 만들어 다른 노동자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하청업체 사장들은 수시로 “(민주노조를)탈퇴하지 않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들에게 1년짜리 계약직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그렇게 6년 동안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하청업체사장과 교섭을 하려해도 “우리가 무슨 결정권이 있냐, 위에서 다 결정하는데”라며 손을 놓고, 그들의 원청인 동희오토에 교섭을 요구하면 역시 “우리도 기아차에서 주문받아 생산하고 대당 단가를 받는 입장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 뿐이다. 이 말들이 엄살은 아니다. ‘기아차-동희오토-17개 하청업체-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어지는 간접고용의 먹이사슬을 이해하는데 6년이 걸렸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현대-기아차에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금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싸우는 이유다.
정몽구 회장님, 직접 나서세요!
우리가 들고 선 누런 봉투 안에는 이런 호소가 담겨있다. “회장님, 이제는 당신이 진짜 사용자라고 인정하시고, 대화합시다!” 회장님의 답변은 이랬다. ‘핸드마이크 사이렌을 귀 찢어져라 울려대기, 눈도 뜰 수 없을 정도의 조명 쏘기, 밤새도록 소방호수로 물대포 쏘기, 자동차 매연 뿜기, 경찰들 시켜서 앉아있던 노동자들 끌고 가기!’ 2009년 세계 자동차 4대 메이커 회장의 답변이 이 정도라니 치가 떨리고 한심할 지경이다. 노동자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 갈 길이 멀어도 투쟁을 멈출 수 없다. 기아차 ‘모닝’을 만드는 노동자는 기아차 노동자라는 상식이 통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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