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농성 100일 아침에 핀 무궁화꽃

[연속기고] 차광호의 굴뚝일기(7) 희망버스 승객들 편지를 보며 흐르는 눈물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비가 계속 쏟아지는 오후, KBS 시사프로그램 ‘오늘을 보다’ 작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9월 10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취재한다. 우리에겐 ‘공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공장은 나에게 청춘을 바친 곳이고 삶의 터전이다.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삶의 모든 것을 일깨워준 곳이다. 그리고 민주노조를 알게 해준 곳이다.

민주노조를 얘기하니까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 1995년 2명의 동료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사 교섭에서 노조위원장이 사측의 관리자에게 뺨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협상이 중단됐고, 회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996년 4월 총파업을 통해 민주노조를 지켜냈다.

1998년에는 노조 위원장이 직권조인을 했다. 전 간부가 삭발을 하며 싸웠다. 3년 동안 천막생활을 한 끝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얻었다. 청춘을 바쳐 지켜온 민주노조가 스타케미칼 김세권 자본과 어용노조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청춘을 바친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굴뚝농성 100일이 지났다. 굴뚝에 올라와 며칠이 지났을까. 닭백숙이 올라와 맛있게 먹었다. 남은 백숙이 아까워 다음 날 다시 먹었다. 그런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비상약이 없었다. 설사를 8번이나 해야 했다.

천막이 없었다. 회사와 경찰이 천막은커녕 핸드폰 충전기도 올려주지 않았다. 태풍이 오면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했다. 천 쪼가리는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땡볕 더위가 몰아쳐도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장모님의 암 발병 소식은 견디기 힘들었다.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동지들이 생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소식은 마음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구미로 출발하기로 결정되고, 희망버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동지들이 힘을 얻고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와 처지와 비슷하거나 더 힘든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 싸움이 우리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투쟁임을 느끼면서 힘이 나기 시작했다.

희망버스를 통해 전해준 응원 글과 편지가 굴뚝으로 올라왔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한 편씩 꺼내 읽는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티셔츠가 다 젖기도 했다.

오늘 아침, 한 동지가 올려준 하와이 무궁화가가 피었다. 비가 오는데도 꽃망울이 활짝 피었다. “힘내라 차광호, 할 수 있다 차광호”라고 응원한다.

우리 해고자들도 저렇게 활짝 웃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동료들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 싸움을 이겨서 모든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평등한 세상으로 같이 갔으면 좋겠다.

추석이다.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이겨서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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