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사랑방이라는 비영리민간단체에서 일한지 1년이 넘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쪽방에 거주하고 있거나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단체에서는 매주 토요일 약 40개의 반찬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몇 주전 토요일, 반찬배달 때문에 부랴부랴 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오니 웬 낯선 아저씨가 사무실 한켠에 앉아 있다. 경황이 없어 무슨 일인지는 묻지 못했고, 대표가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라고만 생각했다.
반찬을 다 돌린 후 자원봉사 하는 학생들과 점심을 먹는데 그 아저씨도 함께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대표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여인숙에서 생활 하다가 방세를 못 내서 쫓겨나신 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분은 기초생활수급자이다. 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알코올 증상도 있는 것 같았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는 정부에서 주거비를 비롯해 몇 가지 항목을 더해서 한 달에 40여만의 기본생활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그 수급비를 어디에 썼길래 한 달 방세를 못 내서 쫓겨나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수급비가 들어오는 통장을 은행에서 정지 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통장을 정지시킨 이유는 그 아저씨가 은행에 300만원의 채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수급비 통장을 보여 주면서 “봐요, 여기 이렇게 수급비가 들어와 있는데 나는 이걸 빼서 쓰지 못합니다.” 라고 말했다. 내가 확인해 봐도 그 통장엔 백 얼마간의 돈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은행이 무지한 것인지 법원이 무지한 것인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장 34조 에는 “ (급여변경의 금지) 수급자에 대한 급여는 정당항 사유 없이 이를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 35조에는 “(압류금지) 수급자에게 지급된 수급품과 이를 받을 권리를 압류할 수 없다.” 고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다음날, 나는 그 아저씨와 함께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러 갔다. 예상 했듯이 법원 측 직원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고, 결정내용을 보니 3개의 금융기관을 모두 포함해서 300만원의 채무가 있음이 명시되어 통장을 정지시킨다고 되어 있다.
하루하루 살길이 막막한 아저씨도 답답하겠지만 이럴 때 민간 사회복지사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싶어 더 깊은 숨을 몰아 쉴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서류를 꾸며서 법원에 제출하는데 수수료도 많이 든다. 송달표가 5만원에 인지세가 8천원이 넘는다. 통장이 정지 되어 있는 아저씨가 감당하기 힘든 액수이다. 사무실 공금으로 그것을 해결하고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그리고 급히 돈을 빌려서 압류된 통장이 풀릴 때 까지 지낼 수 있는 방을 구해 드렸다.
하지만, 방이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당장 먹을거리와 약값 그리고 담배도 태우시던데 그것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 이후로 아저씨는 이틀에 한 번씩 우리 사무실에 찾아온다. 혹시 반찬 남은 거라도 있으면, 쌀이라도 있으면 조금만 달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통장이 언제 풀리는지를 계속 묻는다. 나도 답답하여 주변 정보를 들어보니 법률구조공단이라는 곳이 신청하면 수급자에 한해서 돈도 들지 않고 풀리는 시간도 줄어든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그런 방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법원부터 달려간 내 무지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무조건 기다리는 수 밖에...
나의 일처리 과정을 지켜보던 대표는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 변호사에게라도 물어 보라고 독촉을 한다. 그 생각을 못했구나, 라며 명함을 뒤적여 안면이 조금 있는 변호사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이미 법원에 항고장을 제출한 이후이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왔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요새는 이 문제 때문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아저씨는 하루걸러 한 번씩 찾아와 당장 급하니 돈이라도 좀 빌려줄 수 없냐고 하고....그럴 때 마다 사무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내 주머니에서 돈을 꾸어 준적도 있다.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비슷한 사례가 있나 자료를 뒤져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채무로 인해 수급자의 통장이 정지되어 살길이 막막해진 경우는 2007년 기준으로 14만 6천명이나 된다.
기획예산처에서는 대안책이라는 것을 내 놓았는데, 그것이 ‘기초생활보장 수급금 전용통장제도’이다. 이 법은 2008년부터 시행예정이라고만 되어있고 아직까지 법령으로 제정되지는 않았다. 이 법이 통과 되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기초생활 수급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생계가 막막하지는 않을 텐데...
아저씨는 다음날 동사무소에 가서 차명계좌로 된 통장을 다시 만들어 왔고 동사무소에 이를 알렸을 뿐이다. 그러면 이번달부터는 정지된 통장이 아닌 새로 만든 통장으로 급여가 지급되겠지만 정지된 통장으로 들어온 두 달치의 수급비는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통상적으로 법원에서 압류가 풀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달 이상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아저씨는 지금 사는 방이 너무 추워서 다른 방으로 옮긴다고 한다. 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올해는 기초법이 개정되어 시행된 지 만1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제 시민사회단체는 위와 같은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기초법을 전면 개정하자는 서명을 받고 있는데 그 개정 내용 중의 하나가 “수급자의 통장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압류하거나 정지시킬 수 없다“는 개정안이다.
국가는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지게 된 채무로 인해 한 인간이 인간이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더 나아가 국가에 의한 간접살인을 당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선정을 강화하기 위해 근로능력판정기준을 새로이 도입했다. 이 기준도 역시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인권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아무리 ‘복지’의 시작이 애초부터 시혜나 동정으로부터 출발했다고는 해도 배고프고 집 없는 것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복지 수준은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것을 뛰어 넘는 복지야말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고용 보육 의료 주거 일자리의 불안을 덜어주는 사회적 서비스로 가는 길이라는 걸 국가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일 아닐까?
오늘도 많은 저소득층 및 수급자들은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 받으며 희망을 담보로 내놓고 생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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