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국제연대운동(ISM) 활동가들과 함께 3월 30일, '땅의 날(Land day)'에 부드루스(Budrus)에 갔다. 부드루스는 서안지구의 가장 왼쪽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매주 지속적으로 시위가 이루어진다. 오늘은 ‘땅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더 많은 기자들이 모였다.
부드루스 뿐만이 아닌 팔레스타인 지역 중 외곽 경찰(border police)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지역, 그리고 점령민(settlers)들과의 마찰이 있는 지역은 매주 이와 같은 시위가 이루어진다. 오늘은 이 부드루스에서 있었던 시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점심 12시 즈음 버스를 타고 부드루스에 도착했다. 기사아저씨께 마씨라(demonstration) 하는 곳에 내려달라 그랬고 그 기사아저씨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작은 삼거리에 내렸지만 주변엔 집 몇 채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팔레스타인 청년에게 몇 시에 시위가 시작 하냐고 물어보니 1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남은 시간 뭐하고 지낼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몇 분 만에 20명 가까이로 늘어났고 우리는 말은 통하진 않지만 그냥 서로 보며 웃고 놀았다.
특히 라이언은(미국 활동가) 아이들의 앞에서 텀블링을 성공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덧 1시가 되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약 6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고 대부분이 팔레스타인 청년들과 아이들이었다. 기자들도 약 20명 정도 되었고 기자들의 손에는 카메라와 마이크, 그리고 방독마스크가 들려 있었다. 오늘 시위의 규모를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팔레스타인 깃발을 든 사람이 나타나더니 깃발을 나눠 주기 시작하고 곧이어 땅의 날을 기념하는 모자도 나눠주기 시작한다. 나는 이 모자를 받아 머리에 잘 썼다. 이 모자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늘만을 위한 모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스피커 소리가 들려온다. 스피커로 말하는 사람은 삼거리 중앙에 서더니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구호 소리에 맞추어 이스라엘과의 경계선으로 걸어갔다.
땅의 날을 맞아 하는 시위 치곤 부드루스의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다. 요 며칠간 계속된 비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는데 오랜만에 팔레스타인의 파란 하늘을 보았고 하얀 구름도 보았다. 오늘 같은 날엔 시위 보단 여기 모인 이 사람들과 함께 소풍을 가고 싶었다.
드디어 들판에 있는 경계선에 도착했다. 이스라엘 외곽 경찰들은 이미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경계선 앞에 멈췄고 다 함께 구호를 외쳤다. ‘점령 반대, 이스라엘 물러가라’. 사람들은 경계선에 있는 철문을 흔들어 댔고 그 철문 위로 올라가 팔레스타인 깃발을 꼽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손에 돌을 하나씩 들고 이스라엘 경찰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한다.
철문에서는 돌을 던지고 있지만 철문에서 조금 떨어진 뒤편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그마한 묘목을 심고 있다. 땅의 날을 맞이하여 나무를 심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돌을 던지기 보단 더 많은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옆에는 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과 나무를 심는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구호소리가 커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돌들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한 이스라엘 군인이 총을 들고 한 걸음씩 철문으로 걸어온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총알이 아닌 최루탄이었다.
아, 드디어 시작인가. 방금 한 발을 시작으로 약 10발 정도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경계선에서 멀어졌다. 잠시나마 조용하나 싶었는데 점점 더 많은 최루탄이 지속적으로 발사 되었고 약 50발 정도가 발사 되자 총소리는 멈추었다. 나는 오늘도 미련하게 최루탄 속에서 영상을 찍다 숨을 깊게 마셔버렸다. 그래서 10분 내내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속이 매스꺼워야 했다.
이스라엘 외곽 경찰들의 최루탄 발포가 있은 후부터 경찰들과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간의 지루하지만 슬픈 시위는 계속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손과 새총(slingshot)을 사용하여 돌을 던졌고 경찰들은 조금 심하다 싶으면 최루탄을 쏘았다. 그런 행동을 반복하길 약 10분경. 다른 총소리가 들린다. 6발정도 들렸다. 갑자기 숲에서 숨어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나중에 그 소리가 고무탄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중 한발은 내 친구의 귀를 스쳐지나갔다고 말해줬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고무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엔 ‘다다다다’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늘을 보니 엄청난 양의 최루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 것은 10초에 40발의 최루탄을 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최루탄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지 않아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만약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떨어졌더라면 굉장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돌을 던졌고 경찰들은 계속해서 최루탄을 쏘았다. 최루탄이 나에게 가까이 오자 나는 도망갔는데 길바닥에 시위를 시작할 땐 없었던 돌들이 담처럼 쌓여있었다. 돌담을 따라 조금 더 가다보니 이 돌담의 주인공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 마을의 5~6세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만약 차를 몰고 고무탄을 쏘러 오게 될 경우 그 차가 지나오지 못하도록 돌담을 쌓아 막아 놓는 것이었다.
한눈에 봐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에 무거운 돌을 들며 길에 쌓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나중에 저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때 저 아이들의 기억 속엔 무거운 돌을 나르고 쌓는 기억이 있을 것 아닌가. 우리는 저 아이들에게 그런 기억을 심어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접전이 계속 된 가운데 잠시 소강상태이다. 팔레스타인 청년들도 지쳤는지 나무그늘 밑에 모여 휴식을 취했고 경찰들도 몇 명만 지키고 있을 뿐 나머지는 잘 모이질 않는다. 나도 이 친구들과 함께 나무그늘 밑으로 가서 쉬었다. 약 2시간 동안 긴장 속에 최루탄을 피해 너무 많이 뛰어다녔다. 힘들었다.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서는 강한 척만 하던 아이들은 물을 마시고 코에 레몬을 뿌리며 최루탄의 냄새를 지운다.
나는 길바닥에 앉았고 아이들은 이내 신기하게 생긴 동양인에게 몰려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의 도움을 받아 아랍어를 배워 기본적인 회화정도는 할 수 있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나의 주위를 둘러쌌다. 한 아이가 우리나라의 완두콩처럼 생긴 풀을 준다. 그리고는 먹으라고 한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손으로 콩 껍질을 뜯어 먹으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잘 안 된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한심하단 듯이 이를 사용하라고 한다. 아, 이로 까니까 잘 까진다. 콩 하나를 먹었는데 특별한 맛은 없고 그냥 풀을 씹는 맛이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먹는 나를 보며 좋아하고 이 콩의 이름은 ‘풀’ 이라고 한다. 나는 얘네 들이 한국말을 알아서 이걸 풀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
워낙에 배가 고팠던지라 순식간에 3개의 ‘풀’을 다 먹어치우자 나에게 그 풀을 준 친구는 어디론가 달려간다. 남아있던 친구들 중 한 명은 자기의 친구를 가리키며 말(horse) 라고 한다. 또 그 아이는 자기를 말(horse)이라고 한 아이에게 돼지(pig)라고 한다.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외국인들이 오면 자기들을 이렇게 소개하며 논다.
우리는 동물이 된 두 명의 친구들을 보며 웃고 있는데 아까 어디론가 사라졌던 녀석이 달려와 손에 한주먹 ‘풀’을 쥔 채 나에게 건넨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양손을 내밀어 ‘풀’들을 받았고 주변에 있던 라이언, 아나스, 칼과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이렇게 아이들과 노는 순간엔 이곳이 시위하는 곳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아니 잊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그 시간만큼은 정말로 행복했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 건 없지만 그 아이들 옆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행복이란 건 이렇게 쉽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최루탄 소리가 들려 앞으로 걸어 나가려고 하는데 고무탄 소리가 들린다. 위험하단 것을 느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뭐가 툭하니 굴러오더니 내 발 앞에 걸린다. 이런, 고무탄이다. 저들이 쏜 고무탄이 날라 와 땅에 맞고 내 앞에 떨어진 것이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총에 맞을 뻔했다.
하지만 이 고무탄을 끝으로 경찰들은 더 이상 무기를 발사하지 않았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눈빛이었다. 그냥 이런 시위가 생활의 일부분인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오늘은 ‘땅의 날’이어서 많은 기자들이 왔지만 다음 주엔 이만큼의 기자들이 몰려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도 이 사람들은 오늘과 같은 시위를 계속 한다. 누가 지켜보던지 지켜보지 않던지 이들은 매주 돌을 던지고 최루탄을 피해가며 살아간다. 이들에게서 땅의 날을 맞이한 팔레스타인 투쟁은 없었다. 단지 땅의 날이기에 돌 하나를 던지더라도 더 힘차게, 멀리, 강하게, 정확하게 던지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 시위에 함께 한 사람들은 약 200명 정도이고 (canister 포함) 약 500발이 넘는 최루탄을 쏘았다. 다친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다.(후에 한 사람이 고무탄에 얼굴을 맞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땅의 날이었지만 오늘만큼 땅이 힘들었던 날은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투쟁하지 않으면,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됨을 알기에 무섭더라도 돌을 던지는 것이고 힘들더라도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돌을 던진다는 것은 그들이 쏘는 최루탄, 고무탄과 위력만 다르지 의도는 같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의 고리를 끊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비폭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땅의 날’은 모두를 한 마음으로, 한 행동으로 묶어 주었다. 강한 집념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보이지 않는 슬픔이 느껴지는 말이다. 이 시위가 그렇게 중요하기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돌을 옮기고 있어야 할까. ‘땅의 날’인 만큼 마음이 더 아프다.
나는 이들의 저항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진 자유를 찾아, 자유를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갖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릴 힘이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에 평온함이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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