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어제오늘 죽어간 이들 앞에서

[박기범의 철군투쟁 단식일지 29] 9월 6일

전쟁 안하고 얘기로 하면 안 돼요?

오전에는 수사님과 울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만났다. 수사님은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느라 교실까지 가는 길이 더디고 더뎠다. 수사님은 이라크에 함께 있을 때도 언제나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특히 아이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다. 다만 그 때하고 지금 바뀐 게 있다면 그 때는 렌즈가 두꺼운 필름 사진기였는데 지금은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뿐이다. 그런 수사님이 초등학교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복도마다, 계단마다 아이들이 만들고 그린 것들로 전시해 놓은 게 가득했는데 수사님은 그것들이 너무 예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몇 걸음 움직이는 게 더디다. 2층, 3층 계단으로 올라가면서는 더했다. 쉬는 시간이라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계단 쪽 복도 끝에 서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말뚝박기를 하는 아이들, 복도마다 발 딛을 틈 없이 셋씩 넷씩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 꼭대기 층 5학년 4반 교실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교실에는 책상을 모두 뒤로 미루고 바닥에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 수가 좀 많다 싶어 보니까 일다 님네 반인 5학년 4반 아이들 뿐 아니라 도토리 님네 3학년 7반 아이들도 올라와 있던 거였다. 수사님이 교실로 들어서니까 아이들이 입모아 "살람 알레이쿰, 살람 알레이쿰 살람~ 살람~" 하면서 백창우 아저씨의 <살람 알레이쿰> 노래로 수사님을 맞았다. 예쁘다. 수사님은 교실 앞에 놓인 걸상에 앉아서 '살람 알레이쿰'하고 인사를 받을 때 건네는 답 인사 '알레이쿰 아쌀람'으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그냥 노는 이야기나 생활 이야기도 아니고 '전쟁'이니 '평화'니 하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니, 솔직히 '전쟁'이니 '평화'니 하는 말을 한다는 건 누구 앞에서라도 쉽지 않다. 나 스스로도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도 계속 그게 무엇인지 찾아가야 하는 숙제일 뿐 잘 안다고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은 여간 난감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럴 때 보통은 앞에 선 어른은 아이에게 그저 윙윙거리는 말을 혼자 떠들다! 마치기 십상이다.

그런데 수사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들과 어느새 따뜻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욕심 내는 이야기, 싸우는 이야기, 전쟁 게임 하는 이야기, 전쟁 이야기, 그리고 이라크 이야기. 아이들은 수사님에게 전쟁은 누가 만들었어요? 하고 묻기도 했고, 전쟁은 왜 해요? 하고 물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일어나 물어 본 질문. "그런데요, 전쟁을 하지 않고 이 나라 대통령하고 저 나라 대통령이 만나서 얘기로 하면 안 돼요?"

어디 책이나 글에서 보았으면 별로 감흥 없이 지나쳤을 말이었을 텐데 아까 이 말을 묻던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이 너무 생생하다. 얘기로 하면 될 것을 왜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전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 그래, 맞아. 아이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투지 마라,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라, 이해해라, 남의 것 빼앗으려 하지 마라 하고 온갖 좋은 말들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면서까지 남의 나라를 못살게 굴고 빼앗으려 하는 건지. 아이들 눈에는 그런 어른들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좋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 말이다. 남의 것 빼앗는 것은 ! 나쁘다는 걸 모를 까닭이 없는데 말이다. 아마 전쟁하지 말고 얘기로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던 그 아이도 점점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다르게 살아가는 어른들을 닮아가겠지? 그리고 점점 '아는 것'과 '사는 것'은 처음부터 다른 거였다고 생각하게 될는지도 몰라.

나는 다시 교실 맨 뒷자리에 아이들과 섞여 앉아 아이 같은 생각을 했다. 아, 세상은 정말 아는 데로만 살아가게 되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 될까? 성당이나 교회, 절에서도 온갖 좋은 가르침만 말해주고, 학교에서도 그토록 좋은 이야기만 배우고 있으니 그대로만 살면 세상은 얼마나 살기가 좋을까?
교실에서 아이들과 평화이야기를 나눈 뒤, 아이들은 수사님 머리를 만져보며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엉뚱한 상상, 괜찮은 생각

그리고 또 엉뚱한 상상 하나. 아이들에게 전쟁 게임, 폭력 게임을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고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게 아이들에게 말을 해서 먹히기나 할까 싶다. 그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나? 지금도 인터넷 방에 가면 아이들 뿐 아니라 아주 많은 어른들이 전쟁 게임을 하고 있다. 나는 아직 인터넷 게임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도 열을 내면서 사람들이 하는 까닭은 아마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전쟁 게임, 폭력 게임을 하지 않게끔 하려면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게임을, 놀이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론 컴퓨터 앞에 앉는 것보다 뛰어 노는, 몸을 움직여 하는 놀이가 백 배, 천 배 좋지만 그런 것 다 젖혀두고 컴퓨터 게임밖에 할 수 없는 아이라 하더라도 전쟁이나 폭력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평화를 만들어 가는 게임, 함께 어울리는 걸 가꾸어 가는 게임 같은 것에 더 손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아니면 똑같은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미사일을 쏘고, 탱크를 움직이면 오히려 벌점을 주게 하고 상대편이든 우리편이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게 하면 큰 점수를 얻는다거나 함께 화해하고 평화를 이끌어내어야 가장 좋은 점수로 끝을 낼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말이다. 엉뚱한 상상, 엉터리 상상일까?

하긴,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치는 게 어디 컴퓨터 게임뿐인가? 폭력이라는 것은 이미 '경쟁'이라는 말로 합리화되어 있는 질서와 한 몸이 되어 스며 있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 남을 짓밟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것, 이기는 것이 옳은 것. 박노자 선생은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을 파괴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한겨레신문에 썼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쟁 교육도, 정글과도 같은 사회의 경쟁도, 언제나 상대를 물리쳐야 좋은 것이 되는 운동경기들도 모두 어느덧 본래 우리의 마음을 망가뜨려 놓는다고 말이다. 그럴진대 어떻게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탓할 수가 있나? 경쟁, 경쟁, 경쟁. 그 속에서 혼도 많이 나고 야단도 많이 맞게 되는 아이들, 이기는 것보다 지는 일이 더 많은 아이들. 그 안에서 억눌리고 짓이겨진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컴퓨터 게임 속에서라도 이기고 싶고, 때려부수고 싶고, 짓밟고 시은 게 아닐까?

어른들이 피씨방에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게 되는 까닭 또한 사회에서 부딪히고, 경쟁에 짓눌리는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고싶은 마음에 있는 게 아닐까? 폭력과 다툼, 전쟁 그런 것은 '욕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바로 그 '욕심을 일으키게 하는 사회 구조'에 더 바탕이 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 것 또한 그 둘이 된다. 하나는 내 마음에, 내 생활에 자꾸만 일어나는 욕심과 싸우는 일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욕심을 부르게 하는 사회의 구조, 그 질서와 싸우는 일이다. 사람들 간에 경쟁을 하게 하고, 사람들을 높낮이가 있게 만들고, '우리의 것'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있는 그 모든 질서를 깨뜨려야 한다. 높낮이 없는 세상, 경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기본 원리가 되는 사회, 아무리 '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포함한 모든 것은 사실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바탕이 마련되는 사회. 그런 사회여야만 저마다의 마음에 일어나는 욕심 또한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욕심을 누르고 물리치는 일은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개인간의 다툼은 물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무지막지한 전쟁 따위는 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길거리 악단

몸이 살짝 좋지 않았다. 잠은 오지 않았는데 누워 잠을 청했다. 한 시간 남짓 누워 있었나? 잠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리 누웠다가 일어나니 몸이 좀 가벼웠다. 그렇게 누워 있었을 거면 한 시간이라도 잠을 푹 잤으면 좋았으련만 누워서는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니 잠도 들지 않았다. 누구 말 맞다나 태풍이 올라오고 비가 와서 몸이 좀 처진 거였을까? 뜨끈하게 지진 빈대떡, 막걸리 그런 게 생각났다. 잉라크에서 먹던 호베즈, 아, 따뜻하게 바로 구워내어 먹던 호베즈도.

태풍이 올라온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비가 오긴 했지만 빗줄기가 그리 거친 것도 아니니 가을을 재촉하는 비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태풍이 올라온 거라 한다. 태풍이구나. 그래서 오늘 하려고 계획한 후포의 유랑단 공연은 할 수 없었다. 공연을 할 때 쓰는 앰프며 마이크 시설 따위가 비를 맞으면 아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후포 공연은 취소하고, 그 대신 저녁 시간에는 다시 울진 읍내 단위 농협 앞에서 선전전을 갖기로 했다.

길가에 피켓들을 주루륵 늘어놓았고, 평화바람의 푸념 님, 팔공산 님은 비옷을 입고 피켓을 들었다. 오늘 하루 단식을 함께 하시는 울진초등학교 '생각하는 돌' 님도 나와 파병철회 우산을 쓰고 피켓을 들었다. 거기에 햇살 님, 지자영 선생님, 도토리, 일다, 냉이. 농협을 나드는 문 바로 앞에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살짝 나 있어서 그 아래에 평화바람의 보리, 고철, 밥, 반지 님이 앉았다. 기타와 피리, 오카리나. 그냥 그렇게 길거리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하나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은 풍경. 농협 앞 그 자리는 원래 오래 전부터 누군가들이 그렇게 털썩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웠다.

곁에 선 사람들이 웃기에 뒤돌아보았더니 수사님도 그 곁에 기타를 메고 섰다. 노래에 맞추어 반주를 하는데 제법 잘 치신다. 그 모습만 보면 누가 마흔 세 날을 굶은 사람이라 할까 싶다. 수사님까지 더해서 아주 그럴싸한 악단, 길거리 악단이 되었다. 앞줄에 피켓을 들고 선 사람들은 무릎 춤을 추면서 입으로 따라 불렀다. 별음자리표 아저씨의 노래 <앗쌀람 알라이쿰>을 부를 때는 원래 후렴구인 '전쟁을 반대해, 평화를 사랑해'를 다른 말로 바꾸어 가면서 '전쟁을 멈춰라' ,'파병을 멈춰라', '돌아오라 자이툰', '부시야 그만해', '무현아 그만해', '김선일이 죽었다', '노무현이 죽였다', '전쟁을 끝내라' 하고 계속 만들어 불렀다. 함께 입모아 크게 외쳐 부르니 마음에 찡한 것이 느껴지면서 힘이 났다. 정말로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말들, 전쟁을 멈춰라! 돌아오라 자이툰! 그렇게 마음을 더해 한참을 따라 부르고 있는데 선창을 하던 보리 님이 장난기가 발동했다. '전쟁을 멈춰라'가 아니라 '단식을 멈춰라'로 노래가 이어졌다. 그 곡조, 박자에 맞게끔 '단식을 멈춰라', '밥 먹고 합시다', '재복아 그만해', '기범아 그만해', 얼마나 웃음이 터지던지 다들 허리를 뒤로 꺾어 웃으면서 그 가사를 힘껏 따라했다. 민망해하면서도 수사님과 나도 따라했다. 우리는 이렇게 태풍이 올라온 동해 바닷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거리 위에서 파병철회를 노래했다.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지만 피켓을 앞에 들고서 가슴 찡하게 노래했고, 묵직한 바람이 자꾸만 피켓을 치고 갔지만 아주 큰소리로 웃으며 노래했다. 전쟁을 멈춰라!

울진 읍내 단위 농협 앞 선전전 (평화바람 푸념 님)
어제오늘 죽은 이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한결 나을까 싶어 읍내에 있는 목욕탕엘 갔다. 간판에 스물 네 시간을 한다고 써 있어서 들어갔더니 욕조에 물을 다 빼 놓았다. 오히려 돈은 더 내고 들어왔는데 정작 물에 몸을 담글 수는 없었다. 꽤 여러 날 따뜻한 물로 씻지 못했는데 그걸로 라도 만족해야 했다. 그 사이 안 달아본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다시 지회 사무실에 들러 인터넷으로 뉴스를 살피니 <파병철회네트워크>라는 곳 홈페이지에 알자지라에서 올라온 뉴스를 번역해 놓았다. 나자프에서 협상이 된 뒤로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격과 교전 소식을 알 수가 없더니 이 뉴스를 보니 역시나 그 사이에도 끊이지 않고 사람들을 죽였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바그다드 북쪽 40km 되는 곳에서 폭탄차량 공격으로 미군 하나가 죽고, 이라크인 둘이 부상. 바그다드 북서부의 바쿠바에 일어난 폭발로 이라크인 넷 부상. 휴전 지대이던 사드르 시티에는 미군이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미군이 폭격을 가한 곳은 무장해제한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

이어서 검색해 본 한 일간지에는 어제 하루 이라크의 북부 모술에서만 최소 13명이 죽고, 53명이 다쳤다. 그곳은 한국군의 파병지에서 자동차로 불과 한 시간 이내인 지역. 북부 유전지대인 키르크루에서는 이라크 경찰학교로 자살 폭탄 자동차가 돌진해 최소 스물이 죽고 서른 여섯이 다쳤다. 바그다드의 남쪽, 이라크 중부 도시인 라티피야에서는 미군과 이라크군경이 테러용의자 이백 명을 체포하는 합동작전을 펴던 중 경찰 12명이 죽었다. 어제 하루 최소 40명이 죽고 90명 이상이 다쳤다. 죽고 죽이는 그 싸움 앞에서, 그리고 죽어간 목숨들 앞에서 이 침략군대를 보낸 나라의 백성 하나는 그저 가슴이 철렁할 뿐이다. 어서 전쟁을 멈춰라, 당장 돌아오라, 자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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