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장날, 오늘은 단식순례단이 장터 선전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가 그치지 않는다. 울진 모임 분들 몇 사람과 전화통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가 이렇게 오면 장에 사람이 없는데 이래도 할거냐 하는 얘기였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 하지 말자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바퀴라도 돌고 오자 하며 길을 나섰다. 모두 비옷 하나씩을 입었다. 두 사람은 어제 열심히 만들어 놓은 '엿판'을 끈으로 매어 목에 걸었다. 포도 상자로 쓰던 스티로폼을 가지고 만든 '엿판'이었다. '엿판'에는 사탕을 수북히 담았다. 그 옆에는 <평화를 나누어 드립니다> 하는 피켓을 들었고, 그 뒤로 줄줄이 전쟁반대, 파병철회 피켓들을 들고 뒤따랐다.
시장에 들어갔지만 장날 분위기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장날이야 정말 지나길 수가 없을 정도로 골목골목마다 집에서 가꾼 푸성귀를 들고 나와 자리에 편 할머니들이 길에 가득했다. 옴짝달짝할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푸성귀를 내놓고 도라지 껍질을 벗기거나 밤 껍질을 깠다. 그런데 오늘은 장날이 아닌 평소처럼 시장이 한가했다. 하지만 다니다 보니 오히려 이게 더 나았구나 싶기도 했다. 장날처럼 난전이 아니었으니 늘 장사하는 분들만 나와 있어서 오히려 한 분 한 분께 모두 눈을 맞추며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피켓을 들고 있던 우리는 사탕 서너 개씩 들고 비가 오는 데도 장사를 나와 계신 할머니들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이. 저희는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어서 전쟁 끝나면 좋겠다고, 우리 나라 군인들도 전쟁터에 가지 말라고 그 말씀드리면서 다니고 있어요. 지금 이라크라는 나라에서 전쟁하고 있잖아요? 거기에 우리 나라 군인들도 같이 싸우러 갔잖아요? 그 군인들 거기에 가면 죽고 죽이면서 몹쓸 짓 많이 하게 될 텐데, 그 몹쓸 짓 하지 말고 어서 돌아오게 하라고 그 얘기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럼요, 할머니이. 이거 장사하시다가 입 심심하거든 까서 잡수세요. 이거는 저희가 드리는 전쟁반대 사탕이에요. 아이, 아니요. 파는 거 아니고 그냥 드리는 거예요. 네에, 그럼 많이 파세요."
시장에는 거의가 할머니들이었고, 할머니들은 손에 쥐어드리는 사탕 몇 개에도 아주 밝게 웃으셨다.
평화를 말하면 빨갱이
그런데 하나 곤란한 일. 우리가 장터에 들어서자마자 웬 승용차 하나가 같이 시장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지붕에는 커다란 스피커를 매달았다. 거기에서 떠드는 소리를 잘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자동차 문에는 커다란 글씨로 '멸공'이라 써 있다. 으흐, 이번에는 멸공!이다. 지난 번 장에 나왔을 때는 장사하는 분들 앞으로 우리가 전단지를 건네주러 가 얘기를 붙이면 핵폐기장 유치하자고 나온 사람들 아니냐며 묻는 분들이 많았다. 요사이 핵 폐기장 유치 쪽 사람들이 울진군을 다 들썩이게 하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하루 종일 커다란 방송자동차가 몇 대나 울진군을 돌아다니면서 핵 폐기장을 유치하자고 떠들고, 그 날 같은 장날에는 전단지를 가지고 나와 오가는 사람들에게 쥐어주곤 했다. 그랬으니 우리가 무슨 피켓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핵 폐기장을 유치하자는 사람들인 줄 아는 거였다.
그런데 오늘은 핵 폐기장 봉고차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했더니 멸공 승용차가 따라와서 우리를 앞질렀다. 아이고, 이건 또 뭐야! 멸공 승용차는 기세도 등등하게 그 좁은 시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 비옷을 둘러 입고, 엿판을 흉내낸 사탕판에 아기자기 피켓을 들고 선 우리는 황당한 얼굴로 그 승용차의 뒤를 쫓아가게 되었다. 시장터로 들어왔으니 멸공 승용차 또한 사람 걸음 정도로 밖에 가지 못한다. 그러니 마치 멸공 승용차와 우리가 한 짝으로 보이기에 딱 좋다. "우리는 좀 더 서서 기다리다가 저 차 가고 나면 다닙시다!". 그래서 일부러 비를 맞으면서까지 길에 서서 멸공 승용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가라고 기다리니 참 가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그 승용차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해하자, 화해하자 하고 말하는 자들은 모두 빨갱이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물리치는 멸공만이 살 길입니다. 평화라는 말을 앞세우는 자들은 모두 공산당, 빨갱이입니다……" 어라? 녹음한 방송을 그대로 틀고 다니는 줄만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지금 막 지나가며 하는 말은 물어볼 것도 없이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냥 기가 차서 웃음이! 날 뿐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오늘도 멸공 승용차와 관련해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멸공 승용차를 먼저 보내느라 기다리는 사이에 평화바람의 팔공산 님이 어느 가게 앞에 서 있었는데 그 가게에서 나온 분이 그런 말을 하더란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젊은 사람이 그런 거를 하고 다니느냐고 말이다. 일부러 멸공 승용차를 보내고 골목으로 들어갔지만 골목을 빠져 나오고 하다보면 자꾸만 부딪히곤 했다. 그저 웃을 수밖에.
나라에다 건의를 해야지.
비가 오는데 할까 말까, 그래도 한 바퀴만 돌고 오자고 나온 길이었는데 하나 가득 담은 사탕을 다 나누어주도록 '평화 장사'는 아주 잘 되었다. 콩나물을 내놓고 파는 할머니, 오징어 궤짝 앞에 앉은 할머니, 김이 폭폭 나오는 족발 집 아주머니,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던 기름집 아저씨…… 만나는 분들마다 평화 사탕을 손에 쥐어드리며 전쟁하지 말라는, 우리 나라 군인들 어서 돌아와야 한다는 말씀을 건네었다. 할머니들 앞이라 큰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한 마디 다 들어주시며 이렇게 비를 맞고 다니면서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애 쓴다고 손을 잡아주셨다. 한 건어물 가게에서는 문어 말린 것을 주기도 했고, 과일 가게의 아주머니는 이거라도 먹고 다니면서 힘내라고 사탕판 위로 바나나 한 다발을 얹어 주었다.
사탕을 거의 다 떨어졌을 때쯤 다행히 그 때가 시장 한 바퀴를 다 돌고 큰길로 나오는 길이기도 했다. 큰길 어귀에서 호박과 호박잎을 내놓고 팔던 아주머니 한 분께 사탕을 가지고 앞으로 가 손에 쥐어드리며 역시 전쟁반대, 파병반대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아주 맞장구를 치며 말씀하신다.
"그러게 말이야. 왜 그 쌈터에 우리 아들들을 보내냐는 말이야. 그러면 안 돼지. 그러면 우리 아들들도 죽고, 그 나라 사람들도 죽고, 그런 데를 보내면 안 돼지. 지금 거 가 있는 우리 자석들 다 돌아와야 해. 그런데, 이거를 우리한테 백 날을 얘기해야 무슨 소용이야? 나라에다 가 가지고 건의를 해야지. 건의를 해야 해. 나라에다 건의를 해야지."
"네에, 그래서요 건의도 많이 했어요.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 앞에서 사십 일이나 밥도 안 먹고 단식을 하면서 있기도 했고요, 십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하나 서명도 해서 전쟁하지 말라고, 우리 군인들 보내지 말라고 건의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하고 건의를 해도 대통령이 들어주지를 않고 있어요."
"그래? 건의를 해도 들어주지를 않아?"
"네, 그러게 말이에요. 대통령 뽑아 달라고 할 때는 우리 말 다 들어줄 것처럼 그러더니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우리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듣지를 않아요."
"그러게 말이야. 대통령이 왜 그러는 거야?"
"사람이 죽어서 돌아와도 꿈쩍없으니 정말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나라에 건의를 해야 해. 우리야 다 전쟁 반대하지만 우리가 어쩌라 할 수가 있나? 나라에다 대고 정식으로 건의를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야."
할머니 말씀처럼 나라에 건의를 하면 되는 일이라면 좋겠다. 할머니께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그 동안 얼마나 '건의'를 많이 했나? 그런데도 눈 하나 꿈쩍 않는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된 이들인가? 어쨌든 분명한 건 이 일은 나라와 싸워야 하는 일이다. 정권과 싸워야 하는 일이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비롯해서 그 싸움에서 백성들은 대부분 우리편이라는 것도 말이다. 백성들의 마음은 그런데도, 그 놈의 '건의'는 10만 명 되는 사람들이 이름을 모아서 했는데도, 이렇게 44일, 30일을 굶으며 얘기를 하는데도 우리 '건의'를 들어주기는커녕 이번에는 스리슬쩍 파병주둔기간을 늘릴 궁리만 하고 있다. 할머니 말처럼 '건의'를 해야 한다. '건의'를 하고, '건의'를 하고, '건의'에 귀를 기울일 때까지 줄기차게 '건의'를 해야 한다. 한두 번 했다고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형제가 그곳에 가 있고, 내 형제가 이웃나라 사람들과 죽고 죽이는 일을 하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정권은 그런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두 번 해보다가 그만 지쳐 포기하기를, 그리고 실제로도 함께 파병을 막자고 싸워온 곳들 가운데 많은 곳이 손을 놓았! 다. '건의'하고, '건의'하고, '건의'하는 일. 이 일은 그야말로 나라에 대고 '건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를 잊어 가는 사람들에게 같이 손잡고 '건의'를 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되는 일, '건의'를 하고, 하고 또 하는 일 그것 자체로도 이미 '건의'는 '싸움'이 된 것이며, '건의'로만 되지 않을 때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게 이 전쟁을 두고 보는 백성들의 마음이다. "어서 우리 아들들을 돌아오게 해야지, 머 한다고 그 지옥을 맹글어 보내놨노?"
보잘 것 없는 몸짓이나마
저녁에는 후포로 다녀왔다. 오늘도 비가 그치지 않으니 꽃마차의 앰프나 장비를 꺼내어 공연은 할 수 없고, 오늘 오전에 울진 장에서 한 것처럼 평화 사탕을 나누어 드리며 선전전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하고는 많이 달랐다. 길에 사람이 없다, 없다 해도 그렇게나 없을 줄을 몰랐다. 그저 쌩하니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뿐.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다닐 것 같은 마트 앞으로 장소를 잡고 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섰다. 평화바람의 보리 님, 고철 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들어주는 이 없는, 봐주는 이 없는 노래와 피켓 선전전이었다. 적어도 부구나 죽변 만큼은 사람이 다닐 줄 알았는데 그 길에는 어쩌다 지나는 사람 말고는 우리가 다였다. 바람은 무척 많이 불었다. 아주 한적한 그 길 위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으면서 이제 내일부터 울진을 떠나 안동, 함양으로 다닐 다음 순례 길들을 생각했다. 살짝 긴장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피켓을 다 접고, 그만 울진으로 돌아올 정리를 할 때 누군가 "무지개다!" 하고 하늘을 가리켰다. 정말, 무지개. 쌍무지개가 하늘에 떴다. 지난 번 별똥별을 보았을 때도 그랬듯, 나는 이제 이런 식으로 무슨 소원을! 빌 경우가 닥치면 아주 반사적으로 파병철회를 입 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그냥 그게 버릇이 되었다.
밤에 한터울에 모여 울진 모임 식구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아침에 출근하면 내일은 떠나는 걸 보기가 힘들 테니 미리 인사도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더 챙겨줄 것이 없는지 하면서 마음을 많이 써 주었다. 고마웠다. 오늘로 30일째, 이렇게 단식을 길게 해 올 수 있던 힘이 울진 모임 식구들에 있었다는 걸 나는 안다. 이 조그만 촌에서 백 명도 넘는 이들이 함께 굶었다. 날마다 파병철회 단식우산을 쓰고 군청 앞에 함께 했다. 파병철회에 대한 간절한 마음들을 보면서 나는 힘을 냈고, 파병을 철회해야 하는 이유를 바로 그분들에게서 찾기도 했다.
미군 사망자가 곧 천 명에 가까울 거라고 한다. 지금까지 모두 990명. 4만 명 가까운 이라크인에 대면 작은 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주검이 된 미군들 또한 하나 하나 얼마나 존귀하고 소중한 목숨인가? 마이클 무어 감독이 <<화씨 911>>에서 증언해 주었듯이 대부분 미군들은 미국에서 가장 힘없고, 가장 못살고, 가장 혜택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들 또한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 억눌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라크 친구들과 적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처럼 내가 미군 병사들과 적이 되어야 할 까닭 또한 없다. 죽고 죽이는 그 싸움질을 원하는 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비록 나 하나의 노력 따위로 이 전쟁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에 보잘 것 없는 몸짓이나마 거둘 수 없다. 전쟁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이다.